벌써 저기에서 그녀가 날 왜 어이없이 바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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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응급의학의 명복을 빕니다. Dr. Haro



1.

70대의 만성 변비 환자가 토요일 낮에 도립 의료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이분은 특별한 사유 없이 변비가 심한 환자로 1-2주에 한번씩 응급실에 와서
응급실 의사에게 손가락으로 변을 파내서(Finger enema) 변을 해결하고 있었다.

그날도 오전 열시경에 그분은 왔고, 나는 관장 준비를 마치고 Finger enema를 하려는 찰나,
개울물에 빠져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어 119에 실려 온 환자가 들이닥쳤다.

나는 당장 그 환자에게 달려들어 CPR을 시작했고,
다른 과장님은 에피네프린을 주입하고 중심정맥관을 잡기 시작했다.

응급구조사와 번갈아가며 CPR을 시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변비 환자의 보호자인 할머니였다.
자기 버스 시간 다 되어 간다고 빨리 해달라고 했다.

지금 응급환자가 있어서 할 수가 없다고 했다
할머니는 우리 할아버지도 응급 환자라고 했다



2.

50대의 남자 환자가 가족들 모임에서 낮술을 마시다 갑자기 이상한 얘기를 하기 시작해
도립 병원의 응급실을 내원하여 촬영한 뇌 CT상 당장 수술이 필요한 뇌출혈로 판명되었다.

과장님은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전화해서 이송문의를 할 것을 간호사에게 지시하고
나는 이송준비 및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때 7세의 여아가 휴가차 바닷가에 왔다가 발생한 고열과 열경기로 응급실에 내원했다.
내원당시 환아는 의식이 명료하였으며 가지고 있던 해열제를 복용하고 열이 내린 상태였다.

과장님은 대학병원과 통화하시느라 여념이 없어 내가 응대했고
아이에게 청진 및 간단한 신경학적 검사를 몇개 시행했으나 이상이 없었다.

지금 당장은 환자가 너무 많고 아이가 의식이 명료해서 긴급 처치가 필요없는데
검사를 진행하기에는 지금 뇌출혈 환자가 있어서 오래 기다리셔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기다리시겠냐고 했더니 싫다고 했다.
나는 인근의 주말진료를 하는 소아과를 안내했지만
보호자는 그렇다면 연고지 관계상 서울에 가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몇일 뒤 국민신문고에 내가 신고당했다며 진상조사단이 왔다.
진료거부란다.

나는 출근날도 아닌 날에 CCTV와 함께 대질 조사를 받았고
(당시 내가 거주하던 곳과 도립병원은 차로 한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었다)
당연히, 무혐의 처리가 났지만 날아간 나의 휴일은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았다.


3.

술처먹고 오는 놈들은 매일 밤 있다.
그 도립병원 응급실에는 대략 하루에 40여명의 환자가 왔었는데
그중에 5명가량은 주취자였다.

경찰은 주취자를 발견하면 병원에 던지고,
우리는 의식이 없는 사람이니 CT같은 뇌검사를 진행하고,
(그리고 실제로도 취해서가 아니라 뇌출혈인 경우도 심심찮이 발견된다)

취객은 깨고 나면 내가 언제 여기 데려와 달라고 했으며
언제 검사해 달라고 했냐며 돈 못낸다고 드러눕는다.

기운없어서 영양제 맞고 싶은데 자기가 너무 바빠서 
주말에밖에 못온다는 사람도 너무너무너무 많다.

개중에 응급실에 일하는 사람보다 바빠보이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4.

나는 저 도립병원에 일주일에 2일(48시간), 딱 3개월밖에 근무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고작해야 13-14일밖에 근무하지 않았는데 겪은 일들이었다.

나는 저 석달 응급실 근무로 응급의학과를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대학에 수련하러 가서는 저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정말 눈코뜰새없이 바쁜 와중에
(특히나 내 모교병원은 중증외상센터도 있었다)

애기가 두어시간동안 계속 운다고 데리고 왔는데
정작 도착해서는 한번도 울지 않는 애기라던가

자기가 방금 감자를 삶아 먹었는데 감자에 싹이 나 있었는데 괜찮냐는 사람

상상임신으로 임신이라는 망상에 빠져 임신이 아니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는 

일요일날 남자친구랑 헤어졌는데 반지가 빠지지 않는다는 사람

술먹고 친구랑 장난치다가 항문에 콜라 페트병 뚜껑 꽂았다가 뚜껑만 직장에 남은 사람

관계중에 콘돔이 빠졌는데 어디있는지 못 찾는 사람
(심지어 질 내에도 없어서 집에 가 보니 있었다는 사람도...)

나는 응급실 인턴도 두달밖에 안 돌았는데
정말 지면관계상 다 못 쓸 정도의 에피소드가 많았다..

지금도 이렇게 문턱이 낮아서 응급실이 제 기능을 못 하는데
더 낮추면 응급실이 어떻게 될지 상상도 안된다.


5.

보험은 진짜 응급환자한테만 해줘야 한다.
뇌출혈이라던가, 심근경색이라던가, 분만이나 맹장염 같은것도 해 줘야하며
치료는 급하지 않지만 통증을 견딜수 없는 담낭염이나 요로결석, 통풍도 해 줘야 마땅하다

그런데 저렇게 일괄적으로 혜택을 주면 오히려 정말 급한 환자를 볼 수 없다.

응급실에 급하지 않은 환자가 얼마나 오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인 경험을 들자면
내가 수련 받은 병원에도 메르스 환자가 왔었고, 몇일 후 서울로 이송되셨는데,

메르스 환자가 왔었다는 소문이 돈 뒤 한달여간

응급실에는 평소에 1/20의 환자들만이 방문했다.


1/20의 진짜 응급한 환자만이 응급실에 방문하게 되는
그런 의료 체계가 갖춰지길 염원해본다.





덧글

  • 궁굼이 2019/06/12 11:20 #

    응급실은 대체 왜 이렇게 비싼거야!!
    -> 내일 아침 진료봐도 되는 님따위를 위해서 운영하는데는 아닙니다.

    개같네요 진짜
  • 궁굼이 2019/06/12 11:25 #

    씨발 저렇게 할거면 지들이 운영하는 보건소나 의료원 응급실에 먼저 적용해보고 저러지 왜 저런데요?

    쳐돌았나 진짜
  • 하로 2019/06/12 11:53 #

    ... 아니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이라는 테스트 베드가 있는데 보건소랑 의료원 응급실은 왜.....
    (의료원에서 일하는 1人 -_-)

    그리고 뭐 일산병원에서 테스팅 해봐야 맨날 적자 난다고 수가 올리거나 체계 바꿔주던가요 아무 의미 없음...
  • 궁굼이 2019/06/12 11:56 #

    음...행정부에서 운영하는 의료시설 제가 당장 생각나는게 저 둘뿐이라 그랬습니다 ㅠ
    여튼 왜 국민으로 실험을 하려고하지...
  • 하로 2019/06/12 12:17 #

    뭐 의료정책에 대해선 전혀 기대하지 않아요.
    언제나 그냥 선심성 정책뿐.. 그렇다고 꼭 필요한데다 주는거면 이해라도 하지..
  • 하얀어둠 2019/06/12 11:34 #

    이국종 선생님이 정치계에 입문하셔야겠는데요. 이거...
  • 하로 2019/06/12 12:02 #

    지금도 신상진이라는 의협 회장 출신의 국회의원이 몇선째 해먹고 있지만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정의화씨는 국회의장도 했었지만 마찬가지로 아무짝에도... 19대때 문정림의원정도나 친의료계적인 정책을 좀 내놨을까..

    안철수씨가 의사라고 친의료계 정책 한거 있나요 ㅎㅎ

    이국종교수님께서 들어가셔봐야 일회성으로 끝날거에요 ㅎㅎ

    의사는 욕하면 국민호감이 올라가는 곳이니 표먹고 사는 정치인들이 그렇게 해 줄 리가 없지요.
  • 디스커스 2019/06/12 15:33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읽고나니

    https://www.medigatenews.com/news/3257446175

    이 만화가 떠오르네요... ㅠㅜ
  • 하로 2019/06/12 16:34 #

    저분 만화는 한두컷에 항상 요점을 잘 짚으시죠 ㅎㅎ
  • Eraser 2019/06/12 15:52 #

    사는 곳은 문명화 된 지역인데 정작 중상을 입거나 목숨이 오락가락하면 정글 한복판에 있는거랑 아무런 차이가 없는 현실은 바뀌질 않네요. 몇 명이나 죽거나 병신이 되어야 고치자고 '공론화'할까 싶을 정도입니다.
  • 궁굼이 2019/06/12 16:34 #

    수장이 명절에 과로사해도 안바뀝니다.
  • 하로 2019/06/12 16:39 #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너무 후해서 문제지 정글이랑 비할 바는 아니죠.
    물론 중증외상분야에서 선진국에 못 미치는건 사실입니다만, 그래도 들인 돈에 비해서 굉장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얘기는 쓸데없이 보험을 확대함으로써 들이지 않을 돈이 가짜 응급환자에게 들어가고 정작 필요한 곳에 못 들어가서 의료계를 쥐어짜는것에 대한 걱정입니다.
    저런데 돈 쓰지 말고 중환자실 수가를 올리거나 건보재정에 국고보조금 못 내는거나 내라는 주장이죠.

    그것과 별개로,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죽어봐야 이 시스템은 안 바뀔겁니다.
    환자들의 불편이 있더라도 수술 못받고 죽은 아이 사건처럼 자극적인 이슈 있을때 단발성으로 바뀔 뿐이고
    의사쪽으로 보면 국립의료원 응급실장이 과로사한지 얼마 됐다고 응급실 시스템이 악화되는거 보세요.

    저는 전혀 개선될거라고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 PFN 2019/06/12 17:02 #

    이야 ER 기피과 가나요?
    안그래도 몸팔아서 돈버는 과인데 사망하겠네
  • PFN 2019/06/12 17:46 #

    ER맨한테 물어봤는데 별로 바뀔거 없다는 모양이군요.
  • 하로 2019/06/12 19:02 #

    뭐 지금도 돈없어서 응급실 못가는 사람은 없고 ㅎㅎ 어차피 나라에서 내주니 ㅎㅎ 그리고 내원객 많아지면 오히려 응급의학과 수요는 늘어날지도 ㅎㅎ
  • 2019/06/12 21:4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6/13 08: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9/06/12 21:5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6/13 08:3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피그말리온 2019/06/13 08:01 #

    여론몰이하기 딱 좋은 소재니 아무도 못 건드리고 지금까지 왔죠...
  • 하로 2019/06/13 08:36 #

    뭐 정당하건 정당하지 않건 돈 많이 버는 놈은 나쁜놈이니까요 ㅎㅎ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없는 사회니 여 돈 많이 번 사람들도 딱히 잘한건 없다 싶지만
    돈 많이 번다고 무조건 나쁘다 라는 놈들도 썩..

    정치인들한테 이용만 당할뿐...
  • 라비안로즈 2019/06/15 16:14 #

    ... 고생하십니다. 맘카페에서 왠만하면 열난다고 응급실 가지마세요~~ 라고 홍보합니다.
  • 하로 2019/06/15 23:01 #

    사실 응급실 오시는 어머니의 절반은

    응급실 가도 별로 해줄거 없는거 아시지만
    차마 보고만 있으실수 없어서 오시는거 알아서 ㅠㅠ
    가시면 안된다고만도 못하겠어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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