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체로 들어와 누운 차가운 침대와 수술실 공기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말을 하는 사람들
허리에 느껴지는 바늘의 통증
수술실에 들어온 그녀는 어마어마하게 겁에 질려 있었다.
그녀가 너무 바들바들 떨어서 무통시술 및 척수마취는 매우 어렵게 진행되었고
그것은 그녀의 두려움을 더욱 증가시켰으리라.
부위 마취를 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마취를 진행하면
통증, 온도, 운동 감각이 먼저 없어지고 촉각은 최후에 없어지는데
마취가 분명히 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산모는
포셉으로 감각 체크 할 때마다 아프다고 울었다.
이상하게 여긴 산부인과 선생님이 포셉을 돌려 뭉툭한 곳에 닿기만 해도 아프다고 하였고
시간이 지나도 (아무짓도 안 해도) 계속해서 통증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전신마취를 고려하다가 무통시술 되어 있는 곳으로 경막외 마취를 추가로 하기로 하였다.
경막외 마취를 추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해서 통증을 호소했는데..
문제는 사실 그건 그녀의 두려움 속에서만 있었던 통증이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척추마취와 경막외 마취를 둘 다 받은 격이 되었고
혈압이 떨어지는 상황에까지 몰리게 되었다.
다행이 나는 처음부터 마취가 분명히 되었는데 그녀가 두려움에 이러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경막외마취 약물의 농도를 적게 투여하고 혈압을 올리기 위한 준비를 미리 해 놨기에 망정이지
마취 실패라고 생각하고 정량을 투여했으면 정말 위험할 뻔한 상황이었다.
5.
산과 수술의 특징은
대개 어떤 위험한 상황이 오더라도 아기 낳고 나면 좋아진다는 점이다.
혈압이 떨어지건, 부정맥이 오건, 오심 구토를 호소하건,
산모의 지병이 도지거나, 산모가 패닉에 빠진 상황마저도,
대개의 경우는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태반이 나오면 좋아지고
출혈만 없다면 그 뒤에는 수술실의 분위기도 매우 유해진다.
아이가 나오기 전까지는 긴장이 팽팽하지만
아이가 나오고, 태반이 만출되고, 아이가 울고, 자궁이 수축을 시작 하면
그 뒤부터 수술이 한시간이 더 남았지만 분위기는 편안해진다.
(그리고 부위마취였던 경우에는 산모분을 이때부터 수면마취 시켜 드릴 수 있다.
그전에 수면마취를 시켜 드리면 아이도 함께 잠들기 때문에 할 수 없다)
(아, 혹시 궁금해 하시는 분 있을까봐 첨언하자면
그럼 전신마취 하면 아이가 같이 마취되는거 아니냐고 생각하실까봐.
전신마취제는 태반을 잘 넘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는 마취가 안 된다.)
6.
산모와 아이가 처음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감동이다.
이 산모분도 아이를 낳고, 아이를 만나고 나서는 굉장히 편안해지셨다.
그리고 수술이 마무리 될 때 까지 편안하게 주무셨다.
우리 말을 할 줄 아는 분이라면 나는 넉살이 좋은 편이라 긴장을 잘 풀어주는 편인데
우리 말도 영어도 할 줄 모르는 (대개는 그렇지) 분인 이런 분들이 오시면
그때마다 아, 저나라 말을 배워두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든다.
7.
그래서 러시아어 공부를 시작했었는데
(대개 동남아 분들은 그래도 한국어를 잘 하는 편이라서)
그 뒤로 러시아어 하는 환자 한명도 못 만났고
그리고 러시아어 너무 어려워서 두어달 하다가 포기했...
태그 : 그래서제2외국어공부가재미지다, 근데일본어말곤너무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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