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급박하게 내게 오는 환자들은 산다고 해도 장애가 남고 후유증의 위험이 도사렸다.
승리가 담보되지 않는 싸움이다. 이긴다고 해도 공은 불분명하고 패배의 책임은 무겁다.
모르는 체 할 수 없으나 반가울 수도 없는 존재가 내게 오는 환자들이었다.
목숨과 돈, 관계의 문제들이 뒤얽혔다.
고개를 숙이고 사정하는 것은 내 몫이었고
차가운 답변을 접할 때마다 나는 비참해졌다."
늘 보고 싶던 책이었다.
하지만,
외상센터의 일을 접했던 자로서,
그리고 이국종 교수님의 인터뷰들과 기사들을 보면
이 책 내의 내용들이 무엇일지 예감이 되어서,
슬프고 잔혹한 것이 두려워서가 아닌
현실에 대한 끝없는 좌절이 두려워서 피했던 책을 결국 보았다.
"지도교수였던 외과 과장이 나를 불러 병원내에 신설되는 분과인 '외상외과'를 권했다.
외상외과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일단 과장의 권유에 따랐다.
큰 수술은 성취감이 컸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공부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외상외과를 선택했다."
그는 본인의 업을 숭고하게 포장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직장인들처럼 주어졌고 선택했을 뿐, 이라는 느낌.
책 내에서도 계속해서 내 월급이 어디서 나오는가, 라던가
이걸 해서 나오는 월급으로 먹고 사는 자신이 비루하다고 이야기한다.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1800억원을 들여 대규모의 안전체험테마파크를 지어놨다.
연각 적자 규모는 15여 억원이라고 했다.
1800억원이면 중증외상센터 전체 건립 비용을 상회한다.
세월호와 중증외상에 대한 이슈가 불거진 이래로 안전과 외상을 테마로
수많은 것들이 벌어지고 있으나, 나는 그 핵심 가치를 알 수 없었다."
내가 겪은 큰 병원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 따로, 공을 챙기는 사람 따로였다.
나는 학생시절에도 그런 병원이 참 싫었다.
그런데 공익근무를 하면서 보니 병원은 양반이었다.
나는 공익근무를 하며 공무원에 대한 혐오가 강해졌다.
이 책의 내용에서도 그들에 대한 나의 혐오는 진하게 다시 피어올랐다.
"북한군이나 해외 망명자들의 인권에 대한 고민 가운데 1/100 만큼이라도
피바다 속에서 환자와 함께 신음하는 의료진을 생각한다면, 정책이 이따위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잘 자는 사람들의 책상에서 결정되는 정책에 따라
24시간 쉼 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생사여탈이 결정되는 현실에 신물이 났다."
책 보는 내내 교수님은 병원과 사회 시스템에 좌절한다.
나는 이국종 교수님과 이 잘못된 시스템에 갈려 나가는 수많은 의료인들이
그 시스템에서도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건지려고 버티고 애쓰기보다는
이제라도 그들 개인의 행복을 찾으셨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나는 전공의 시절 이교수님이 계신 곳과 비교 할 수 없이 어설픈 센터였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잠깐 맛이라도 본 외상 마취는 참 좋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버티지 않았다.
공은 불분명하고 책임은 무겁다.
거기에 사실은 보상까지 미비한 곳에서 도망친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환자의 파열 부위 깊숙이 들어갈 때, 외과의사들은 환자의 전신 상태까지는 집중하지 못한다.
마취과 의사들만이 그 공백을 틀어막는다.
수술대 위의 환자는 마취과 의사들의 손끝에서 무의식에 잠기고,
외과 의사는 그 상태에서만 환자의 환부에 접근할 수 있다.
나는 늘 내 좌측에서 말없이 궂은일을 도맡는 마취과 의사들이 고마웠다.
거칠고 험한 수술적 술기들이 이루어지는 죽음의 전장에서
그들이 죽음의 기운을 막아주지 못한다면,
차갑게 변해 미끌거리는 피의 감촉만이 내 손 끝에 전해질 것이다."
내가 마취통증의학과를 하겠다고 했을때,
영상의학과를 하라고 권했던 친한 선배가 해 준 말이 있다.
"너 혹시 마취를 쉽게 생각하는건 아니니.
가만히 냅둬도 죽을만치 안 좋은 사람들을 데려다가
밑에서 칼로 째고 전기로 지지고 잘라가며 수술을 하는데
그런 사람을 죽지 않게 살려두는 것이 쉬운 길일 리 있겠니"
물론 지금도,
심장마취를 하는데 맥박이 요동치며 혈압이 뚝 떨어질때,
간수술을 하는데 수술 필드에서 어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잔뜩 흡입되는 소리가 날 때,
뇌출혈 수술을 하는데 두개골을 열자 마자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쏟아져 나올 때
스트레스 받고 너무너무 힘들고 무섭지만,
무심코 퇴근하다가 저랬던 환자들이 걸어서 퇴원 하는 것을 볼 때
갑자기 생각나서 그 환자분의 차트를 조회하니 일반 병실에서 식이까지 진행 될 때
아무도 몰라줘도 좋은 나만의 환희가 느껴지는 것이 그리워서
언젠가 좋은 날 제도에 내가 갈려나가지 않게 되면
나는 다시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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