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딱히 종교는 없습니다만..."
처음으로 사적인 자리를 가지던 날
세대 차이도 있고, 아직 낯설고 편안하지 않은 다른 과의 아득한 후학인 우리에게
최고의 대학을 나와서 최고의 병원에서 가장 어려운 파트에
평생을 머물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초로의 의사는 이렇게 운을 떼었다.
"노부모님을 모시고 있으니 가끔 효도삼아 어머니를 모시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오대산의 절에 갈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저 멀리서 스님 한 분이 아이고 대보살님 오셨습니까!
하면서 뛰어나오신단 말이지. 아흔이 넘은 우리 어머니 보고.
왜 그러겠어요. 울 어머니가 나 몰래 내가 드린 돈으로 시주를 많이 한 거겠지.
집에 가면서 물어보니 자식들 이름으로 여러번 했다고 하시는게
족히 천만원은 넘게 하신 것 같더라고."
한참 어린 후배에게도 예의바른 말을 항상 구사하지만
날카로운 눈빛의 그는 먼 곳을 보며 씩 웃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혹시 국립대에 있던 나에게 누가 될 까봐
아들이 뭐 하는지는 얘기를 안 했댔거든요.
그런데 뭐랄까, 나는 불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절에서는 신년이 되면 가끔 사주같은걸 봐 주는 분이 있나봐요.
그래서 어머니가 그분에게 옆에 있는 나를 좀 봐달라고 얘기를 했더니
글쎄 그 스님이 나를 보고 어깨에 귀신이 남달리 많이 붙어 있다는거야.
나는 용하다 싶었어.
어찌되었건 나에게 수술을 받은 사람은 전부 살려고 받은거지
큰 수술이니까 죽어도 괜찮다 하고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이야.
다행히 지난 2년간 내가 수술 한 환자 중에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어찌되었건 평생으로 보면 오십명중에 한명은 세상을 떠나셨다고.
그런데 내가 한해에 100명 가까이 수술을 했으니 살아나신 분들은 괜찮지만
30여년간 2명씩이면 얼추 잡아도 50명 이상은 나에게 한을 품었을거야."
우리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대답이 궁해졌다.
그러면서도 내 어깨에도 몇명의 한이 서려 있을까 다들 생각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분들이 납득할때까지 내 어깨 너머로 내가 하는 일을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그리고 여기 계신 우리 모두가 환자들에게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그걸 본 들 당신의 한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 정도는 이해 해 주시고 성불하셨으면 좋겠어요."
노의사의 눈가가 촉촉해지고
우리의 마음도 창밖의 빗소리 같았던,
그날은
그분이 2년만에 우리와 함께 환자를 수술실에서 놓쳐버린
그 다음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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