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저기에서 그녀가 날 왜 어이없이 바라볼까

dabihian.egloos.com

포토로그



오늘의 수술실 : 소아심장 ㄴ Specialist


1.

나는 심장마취를 전공으로 삼기는 했지만
(사실은 정식 세부 분야 명칭은 심폐혈관마취지만
 폐수술 마취는 안 좋아해서 잘 언급하지 않는다)

내가 수련 받은 병원은 지방인데다 국립대가 아니었기에
소아 심장 수술은 거의 없었고
(있다면 동맥관 개존 폐색술 같은 가벼운 것들)

지금 있는 병원도 빅5는 아니기에 주 2-3회가량 성인 심장 수술은 계속 있지만
소아 심장 수술의 경험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우리나라에는 소아 심장 수술이 별로 없다.
산전진찰 시스템이 굉장히 뛰어나기 때문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발견해서 기형이 심각하면 임신종결을,
기형이 심각하지 않다면 큰 병원(주로 빅5)으로 가서 태어나자 마자 치료를 받게 된다.


2.

그랬는데 정말 예상치도 못하게 이번주에 소아 심장 수술이 잡혔다.
흉부외과 심장파트 교수님 중에 한분이 소아 심장이 전공인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아니 여기서 조금만 가면 세브란스고 서울대도 멀지 않은데
지방 국립대에서도 흔치 않은 그 희귀한 소아 심장 수술이 
서울 코앞인 여기서 생길 리 있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지난 주 관상동맥 우회술을 마칠때쯤 흉부외과 교수님이
"다음주에 8k 애기 VSD(심실중격결손) 수술이 있는데요.."
라고 얘기 하셨다.

순간적으로 나는 8kg라는 의미의 8k를 8day라는 의미로 알아듣고 더 패닉
다시 확인하고는 조금 안도했지만

.... 하지만 뭐 8일짜리 신생아보다는 낫지만 8kg짜리 애기라고 크게 뭐가 다른가...
하고 다시 패닉...


3.

주말동안 여러가지로 심란했던 마음을 다잡고 논문과 교과서를 파서
어느정도 이론과 최신 지견을 다져놓고 만난 애기.

들어온 애기는 심장 기형을 가진 것 치고는 굉장히 컨디션이 좋았다.
당연히 경험이 일천한 나는 메인 마취를 하지 않고 보조로 들어갔고
우리 과장님의 지도하에 그 작은 혈관에 마취에 필요한 이런 저런 관들을 거치 해 보았지만

성인과는 다른 크기의 기구들, 성인과는 다른 탄력의 혈관들에
과감하게 진행 하지 못하고 과장님께 SOS..

과장님은 척척척척 나랑 전공의까지 지도 해 가며 술기를 진행 해 나가시는데
너무너무 멋있었다.....



4.

어른과는 확실히 다른 반응.
갓 태어난 자그마한 심장의 체력은 어른의 그것보다 훨씬 강했지만
혈액량 자체가 적다 보니 검사를 위한 작은 채혈과
심장 수술을 위해 연결하는 관에 채워지는 혈액량에도 혈압은 들썩들썩 했고

너무 어려서 쓸 수 없는 심장과 혈압약들
너무 작아서 행할 수 없는 수많은 술기들의 제약이 많았지만

하지만 어린 심장은 기형이 있음에도 오히려 
늙고 병든 어른의 심장보다 그 충격을 잘 흡수 해 냈고,
여러가지로 어려운 수술은 잘 마무리 되었다.



5.

충격적인 경험이고 그간 공부했던것과 실제를 비교하며
나는 의사로서 큰 경험을 얻었다.

그렇지만 애기가 너무 작아서 혈관을 찾아서 큰 관들을 거치하는게 너무 어려워...
경험은 이번 한번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인생사 과연 내 뜻대로 될지...

흉부외과 의사가 한분 더 와서 야간이랑 주말에 응급수술도 할 것 같던데...

... 도망쳐야 하는 건 아닌가..!!







덧글

  • blue snow 2021/09/15 23:06 #

    고생하셨습니다.. 그냥 읽기만 했는데.. 메디컬 다큐를 본 것 같았어요.ㅠㅡㅠ 대단하셔요. 정말로..
  • 하로 2021/09/17 22:50 #

    어휴 아니에요 ㅠㅠ ㅎㅎ 과찬이십니다 ㅠㅠ
    저도 생소한 경험이었어요 ㅎㅎ
  • zen 2021/09/22 09:44 #

    하로님,

    코로나19가 창궐하지만, 빛나는 달을 보면서 소원도 빌어보시고
    모든 소원이 성취되는 한가위가 되셔요.... ^_^
  • 하로 2021/09/22 14:25 #

    감사합니다^^ 별다른 소원이 없어서 빌 건 없지만
    가족분들의 건강 정도는 빌었어요 +_+

    zen님도 연휴 잘 마무리 하시고 좋은 한가위 보내셨길!!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