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저기에서 그녀가 날 왜 어이없이 바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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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쓸쓸한 당신 / 박완서 Books & Music


해가 바뀌니 환갑해였다. 
낳은 해의 육갑이 한바퀴를 돌아온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육갑을 한다'는 게 결코 칭찬이 아닐텐데 너도나도 내 앞에서 육갑을 하려 들었다.
설날 아침 큰아들도 전화로 세배를 대신한다며 그 얘기부터 했다.
나더러 회갑잔치 대신 미국 구경을 오라는 거였다.
나만 좋다면 잔치는 칠순으로 미루고 그렇게 하기로
저희들 삼남매끼리는 벌써 합의를 본 모양이었다.


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직전에 발간된 작가의 단편 모음집.

필력으로는 두말 할 나위 없는 작가이고
마지막 꽁트에 이르러서는 31년생인 작가가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A/S 기사에게 타이핑을 대신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오해를 사며
"요즘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할머니한테까지 일거리가 오네요."
라며 신기해했다는 각색된 일화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에피소드가 빠질데 없이 흡인력이 있었다.

물론 작가의 연령대가 연령대이니만큼 문체가 고루한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작가가 이 글을 쓸때 이미 60대 중반이었음을 생각하면
그리고 작중의 배경이 50년대에서 90년대를 오감을 생각하면
예전에 08년을 배경으로 해서 쓴 조정래님의 정글만리에서처럼
문체나 표현이 올드하다고 해서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금 조박사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그게 없었다.
연애감정은 젊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정욕이 비어 있었다.
정서로 충족되는 연애는 겉멋에 불과했다.
나는 그와 그럴듯한 겉멋을 부려본 데 지나지 않았나보다.
정욕이 눈을 가리지 않으니까 너무도 빠안히 모든 것이 보였다.
아무리 멋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닥칠 늙음의 속성들이
그렇게 투명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없잖아 있었다.

각 단편들의 주인공은 한편을 제외하고는 전부 여성분들이었는데
그 작중의 주인공을 비롯한 꽤 많은 등장여성들은
대체적으로 감정기복이 심했고 즉흥적이었다.

물론 단편 내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마무리하려면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었겠지만
저렇게 하나같이 기복이 커서야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으며
반대로 작중의 남성들은 하나같이 거드름이나 피울 줄 알았지
책임감이라고는 없는 모습으로 나오는 것이 일관되어서 실망스러웠다.

스토리의 다양성을 생각해보면 더욱 아쉬웠는데,
스토리는 하나같이 비슷한 점 없이 잘 짜여져서 진행되는데

읽는 도중에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을 앞의 단편의 상황에 넣어도
성격들이 큰 차이가 없어 비슷비슷한 결론들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러서
약간은 흥미를 잃었달까.

단편집이 아니라 하나의 장편이었다면 캐릭터들의 유사성에 와 닿지 않았겠지만
모음집이다 보니 조금 아쉬웠다.


전반적으로는 각 이야기 하나하나는 다 재미있었으니
죽 읽기보다는 하나 읽고 쉬고 하나 읽고 쉬면 더욱 재미있을듯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