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일기입니다.
훗날 활자가 될 것을 염두에 두거나
누가 읽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같은 것을 할 만한 처지가 아닌
극한 상황에서 통곡 대신 쓴 것입니다.
소설가 박완서님에게 있어서 88년은 지옥과도 같은 한해였으리라.
88년 5월 남편분이 폐암으로 별세하신데 이어서
8월에는 1남 4녀중 유일한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고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서울에 있을 자신이 없어 부산 큰딸네로 가서 지내며
일기를 썼던 것을 엮어서 낸 것이 이 책이다.
박완서님에게는 외아들이었던 호원태씨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당시에 서울대병원에서 마취과 레지던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퇴근길에 교통사로고 운명을 달리했다고 하니
나도 전공의 시절 과로로 인한 집중력 저하로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고
실제로 본과 3학년때 실습을 나가던 중 모교 병원의 정형외과 2년차 선생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지신 적이 있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이 책을 보게 된 계기는 마지막에 적어 둘 호원태 선생님의
마취과를 선택한 이유에 관한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와 닿았던 기억과 함께
최근에 본 박완서님의 단편집이 인상깊었기 때문이었다.
여직껏 지녀온 신의 개념 중에서 자비로움, 공정성 같은걸 빼 버리면 신 또한 시체만 남게 된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시기 직전에 큰 소리로 남기신 말은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라고 기록하고 있고 그 뜻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작 숨은 뜻은
"하느님, 하느님, 결국 당신은 안 계셨군요?"가 아닐까.
책 제목인 한 말씀만 하소서는 천주교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미사 중 구절로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에서 따온 것이지만
정작 책의 내용은 신에 대한 원망과 저주로 가득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심경을 담아 낸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이 천주교 월간지인 생활성서에 연재되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아무리 좋은 일도 그걸 못이 박힌 가슴으로 느껴야 할 때
어떠하다는 걸 네가 알 리가 없지. 또 알아서도 안 되고.
그러나 너도 손가락에 가시 같은 게 박혀 본 적은 아마 있을 것이다.
가시 박힌 손가락은 건드리지 않는 게 수잖니?
이물질이 닿기만 하면 통증이 더해지니까.
에미에게 너무 잘해주려고 애쓰지 말아라.
만약 손가락 끝에 가시라도 박힌 경험이 있다면
그 손가락으로는 아무리 좋은 거라도, 설사 아기의 보드라운 뺨이라도
아픔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만져볼 수 없다는 걸 알 테지.
그런 손가락은 안 다치려고 할수록 더욱 걸치적거린다는 것도.
못박힌 가슴도 마찬가지란다.
오오, 제발 무관심해다오. 스스로 견딜 수 있을 때까지.
내가 살면서 가장 궁금해 하는 일 중 하나는
내 자식이 생겨서 그 자식을 내가 대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라는 점이다.
그런데 자식을 잃은 부모의, 특히 배 아파 낳은 어머니의 마음은
차마 상상조차 가지 않아서 내가 그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너무나도 절절했던 글에서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인상 깊고 와닿은 글이었지만
내가 이 글의 얼마만큼이나 이해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들이 인턴 과정을 끝마치고 전문의는 무슨 과를 택할까 의논해왔을 때 생각이 났다.
그 애는 나만 반대하지 않는다면 마취과를 하고 싶다고 했다. 뜻밖이었다.
나는 아들로 인하여 자랑스럽고 우쭐해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누가 시키거나 애써서가 아니라 그 애 스스로가 선택한 학교나 학과가
애미의 자긍심을 충분히 채워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으레 그러려니 했다.
내 무지의 탓도 있었지만 마취과는 어째 내 허영심에 흡족지가 못했다.
나는 왜 하필 마취과냐고 물었다. 그애는 그 과의 중요성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 식으로 말해서 중요하지 않은 과가 어디 있겠니?
이왕 임상을 할려면 남 보기에 좀더 그럴듯한 과를 했으면 싶구나."
나는 내 허영심을 숨기지 않고 실토했다.
그때 아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어머니, 마취과 의사는 주로 수술장에서 환자의 의식과 감각이 없는 동안
환자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가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의식이 돌아오면
별 볼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환자나 환자 가족으로부터
고맙다던가 애썼다는 치하를 받는 일이 거의 없지요.
자기가 애를 태우며 생명줄을 붙들어준 환자가 살아나서
자기를 전혀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쓸쓸한 일이겠어요.
전 그 쓸쓸함에 왠지 마음이 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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