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혈관조영술을 받고 응급실로 돌아온 순간에도 보호자는
'돈이 없다', '집세를 내고 나면 병원비를 낼 수 없다',
'어차피 살지 못할 거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죽여 달라'는 말까지 했다.
그런 외침은 중환자실에 입원할 때까지 이어졌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부터 환자의 예후가 매우 좋지 않으리란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고 실제로도 환자는
집중적인 치료에도 며칠 수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다.
입원기간이 길지 않아 시청에서 지급하는 '긴급 의료비 지원'으로
병원비를 충당할 수 있었으나 보호자는
'돈이 없다고 그냥 죽여 달라 했는데 끝까지 이런 저런 검사하고 치료해서
돈을 받아 챙기는 나쁜 병원 놈들'이라며 끝까지 우리를 원망했다.
요즘은 각 과 의사들이 쓴 책들이 많아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편이지만
내가 의대를 지망하고 다니던 초반에는 아주 전문적으로 쓰인 책들을 제외하면
친근하게 쓰인 책으로는 유명한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2005)이 나오기 전이었기에
생생한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을 일이 적었다.
그때의 내가 봤더라면 더 감흥이 있었을법한
그렇지만 이제는 뭐 이런일은 흔히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쓴 응급실 이야기.
응급실은 개인적으로는 취향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좋아하는 공간도 좋아하는 환자군도 아니기에
남궁인 선생님이라던가 그 외에도 흔히 구해 볼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다가 이제는 그곳에서 멀어진지 오래라 괜찮겠지 싶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적지 않은 환자와 보호자가 비슷한 상황에서
'정신과 진료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정신병이라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거나
'마음의 문제니 의지로 이겨낼 수 있다'고 판단한다.
전자의 경우 다양한 병원의 응급실과 외래를 방문해서 수많은 검사를 반복한다.
급기야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서울의 대형 병원까지 찾지만 애초에 육체적 질환이 아니므로
그들의 바람을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후자의 경우에는 유명한 상담사, 스님, 신부님, 목사님을 찾는다.
심지어 용한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기도 하고 마음을 수행하는 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의지로 이겨낼 수 있다면 질병이 아니다.
'정신 질환' 이라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의지만으로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황폐해지는 동안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할 때가 많다.
심지어 무고한 사람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이제는 이런 문제에 사회가 관심을 기울일 시기가 아닐까?
작가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쓴 글이라 공감이 안 가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응급의학과 의사라면 저렇게 느낄 수 있지, 싶은 내용이 많았다.
다양한 군상들이 나오는 응급실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꽤 흥미롭게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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